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
- Admin
- Jul 20, 2018
- 2 min read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
(Christ Our Everyday Life)
- 데이빗 윌커슨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주님으로부터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러운 비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타오르는
강력한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변화산에서 기쁨, 평강, 비전과 영광으로
내려 왔지만 귀신들린 아이를 직면하게 됩니다.
마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큰 비전과 열정을 가진 베드로
너는 산에 머물고 영광 중에 살기를 원했지만
이제 여기 내려 와서 일상의 삶의 문제들을 직면해야 한다.
산 아래의 일상적인 세상을 봐.
미치광이 세상은 내가 통제하고 있어.”
마귀가 이 사람들에게, 특히 베드로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비참한 시간, 전쟁의 때이다.
이제 산 꼭대기의 경험이
산 아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자.”
이 제자들, 사도들은 그 산에서
이제 막 내려 왔습니다.
그들은 겁먹은 채로 서있었습니다.
모세, 엘리야와 얘기하고 신령한 얘기를 들으며
하나님의 영광에서 돌아온 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이제 그들은 약하고 무능한 상태로
마귀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많이 볼수록
사단은 일상의 삶에서 여러분을 더욱 위협할 것입니다.
주님은 어느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은 미지근함에서 나오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았던 신앙생활에서 나오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상숭배에서 나오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에게 임했습니다.
설교의 메세지가 여러분의 심령을 만졌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기도합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들도 변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도 또한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일자리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사람들의 반응도 변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 밤의 산에서 내려와
월요일에 직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휘저으려고 일으키는
전에 없던 종류의 소란이 끊임없습니다.
바로 앞에서 이상한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반대와 불가능의 산, 여러분을 대항하는
마귀의 활동입니다.
때때로 아주 거칠고 불쾌합니다.
여러분은 그냥 앉아서 손을 놓고 말합니다.
“주님, 잠깐만요.
저는 아직 주일 밤의 영광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 모든 사단의 계획은 예수님이 일상의 삶에서
일하시지 않으며 산의 영광이 직장에서 역사하지 않는다고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을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설득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주일 사람’이며 또한 ‘주중 사람’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평일의 사람
아람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의 신이다.
골짜기에서 그들과 싸우자.
주님은 산의 신이지만 골짜기의 신이 아니다.”
(열왕기상 20:28)
“주님은 주일의 하나님이시지만,
월요일의 하나님은 아니야.”
월요일이 ‘골짜기’입니다.
사람들은 ‘우울한 월요일’이라고 하지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래서는 안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영적인 경험 이상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매일의 삶’이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직장과 집과
모든 곳에서 외적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의 생명(삶)이신 그리스도’
(골로새서 3:4)
얼마나 많은 놀라운 영적 정점의 경험들을 가졌는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실제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해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계시와 지식을 가졌든지 상관없습니다.
이 모든 영적인 경험들, 교회나 골방에서의 경험들이
그 경험들이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삶에서의 승리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환되고, 입증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만 살아계신다고 믿습니다.
일상의 그리스도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교회’를 하나님께서 전에 일하셨던
역사속의 조상들과, 예수님에 대해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사자 굴의 다니엘에 대해
세명의 히브리 청년들에 대해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지 알며
과거에 기적을 일으키셨음을 잘 압니다.
복음 전파는 단지 말 뿐입니다.
오늘날 문제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 밖의 평범한 사람들은
여러분이 왜 교회에 가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불신자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건물 안에서만 능력을 가지신다고 확신합니다.
신자들은 그냥 모여서 기적을 행하셨던
역사속의 예수님에 대해 얘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
일터에서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
(골로새서 3:3-4)
실제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신학적 의미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의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산다는 것
즉, 매일 온전히 주님께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 세부적으로 관여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잠시 나타나는 영광의 불꽃을
추구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일주일에 7일, 모든 깨어 있는 시간
하나님의 영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기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