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질투
- Admin
- Jun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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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질투
(The Jealousy of God)
- 데이빗 윌커슨
복음의 핵심은 그 분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의 계시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출애굽기 34:8
그를 예배자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신 사랑,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아버지를 예배하게 됩니다.
동일한 장에 추가적인 계시가 있습니다.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출애굽기 34:14
질투는 항상 사랑과 관련됩니다.
주님은 거룩한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흠없는 신부만 바라보십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마음이 사로잡히셨다는 것을 아시나요?
주님은 그분의 자녀들과 깊은 사랑에 빠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는 주님께 매우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주님은 피와 생명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신부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신부와 열정적인 사랑의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은 신부를 열정적으로 질투하십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관계에서 불성실한 것을 참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어떤 배반도 참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잠입한 어떤 다른 사랑도 참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부가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한눈 팔면 안됩니다.
“나는 너만 바라본다. 너는 나만 바라보라.”
사랑하시는 신부가 어떤 다른 사랑이나 다른 관심이 들어와서
주님을 향한 관심을 잃게 된다면
하나님은 시기하시고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신부와의 특별한 사랑의 관계에 대해
매우 질투하십니다.
그 사랑을 밤새 지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함께하며 이 사랑의 관계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 자신에게만 헌신하기를 (권위를 가지고) 요구하십니다.
요청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사랑하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한일서 2:15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이 들어와서
여러분의 시간, 생각, 관심을 차지한 어떤 것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사야 62:5
하나님은 여러분을 신실하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속이고 배반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그렇게 사랑하는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완전히 신실하십니다.
대대로 이어 가면서,
내 입으로 주님의 신실하심을 전하렵니다.
… 주님께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하늘에 견고하게 세워 두실 것입니다.
시편 89:1-2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 그러나 (죄인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6-7)
누가 죄인입니까?
“나는 죄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며 회개하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나는 자비롭다.
내게 헌신하고 나만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자비롭지만,
죄 있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죄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미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씀하시는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무나 악한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너무 당황하게 해서 하나님의 질투심이 타오릅니다.
그것은 불같은 질투심을 의미합니다.
강력한 분노와 진노로 가득한 것입니다.
죄를 대적하는 질투심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사랑에 소원해지는 죄를 지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사랑, 새로운 마음의 관심을 찾았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싫증났습니다.
우상들을 향한 시선
그들은 모든 민족들의 우상들을 봅니다.
그들은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닌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질투가 언급될 때마다,
우상숭배와 연관됩니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다
신명기 32:16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몸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질투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삶에 들어온 우상들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께 질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돕는 우상’은 환난의 때에 육신의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킵니다.
“내가 너를 찾았고 내가 너를 도왔다.
모든 문제와 어려움에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내가 갖고 있는데 …
너는 나만을 의지해야 한다.
너는 사람들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육신의 의지해서는 안된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자다. 나는 너의 공급자다.
사람들에게,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라.”
두번째로 ‘원망의 우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잠언 19:3
‘원망’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에 사로잡히다’는 뜻입니다.
‘원망하다’라는 단어는 ‘상황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고 불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평하게 됩니다.
우리는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말합니다.
‘신뢰’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신뢰하게 됩니다.
신뢰가 없다면 진정한 사랑의 토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온전히 주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그것은 고귀하고 거룩한 예배입니다.
자연적인 눈으로 볼수 없지만
오늘, 여러분이 영적인 눈으로 보게 되길 원합니다.
‘두려움’과 ‘근심’의 영을 섬기는 것은 악한 우상숭배입니다.
‘원망’ 또는 ‘걱정’의 우상을 섬기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 삶에 관여하신다것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안전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성공여부를 신실한 창조주께 맡기십시오.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을 넘어서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약속을 능히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걱정하며 앉아 계십니까?
가정과 삶의 근심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여러분이 계속 그렇게 한다면…
“목사님, 저도 인간이에요. 당연히 걱정되고 신경쓰이죠.”
그것은 주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주님을 매우 질투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이 앞으로의 일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당장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없을 지라도
여러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시간에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단지 주님의 품에 머물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에 반응하여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일하시게 하십시오.
예수님만으로 완전히 만족하고 채워지며
항상 예수님이 전부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제가 주님보다 다른 것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을 가장 질투하시게 하는 것을 심령으로 느낍니다.
우리가 매일, 언제나 주님께 관심 갖지 않을 때
주님으로 몹시 질투하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의 임재에 머물지 않으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어떻게 찬양 하든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홀로 있고 싶어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