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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폭풍 속의 유일한 소망

  • Writer: Admin
    Admin
  • Apr 19, 2017
  • 5 min read

다가올 폭풍 속의 유일한 소망

(A call to anguish, Man’s Hour of Darkness is God’s Hour of Power)

- 데이빗 윌커슨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들 중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마지막에 가까워 가고 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중요합니까?

여러분은 정말 걱정합니까? 그들이 죽어서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요.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도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때입니다.

여러분,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 말하지 마십시오.

인터넷과 TV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요.

비통함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눈물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통곡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금식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한 밤 중에 깨어나 기도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아모스 대언자는 외쳤습니다.

“화 있을진저…. 취하여 먹고….. 헛된 노래를 주절거리며….. 포도주를 마시며…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아모스 6:1-6)

히브리어 원문의 단어를 보면 “그들이 요셉(이스라엘)의 폐허에 대해 비통해하며 기도하지 않았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해 고통하지 않았고 비통해하지 않았습니다.

코메디, 즐겁게 찬양하는 것, 먹고 교제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네, 네, 네!”하고 좋아합니다.

눈물, 비통, 기도, 금식에 대해서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라고 합니다. “그건 안 할래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자녀들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가 했던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죄와 모든 백성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했습니다.

‘내’가죄를 범했다고 했고 또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파괴와 폐허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한번도 “왜입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그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도록 허락하셨을까?

왜 그렇게 많은 모욕과 살인을 허락하셨는가?

느헤미야는 우리가 요즘 미국에서 묻는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충돌로 무너져 2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도록 허락하셨는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가?

카터 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알려 주셨을 때 제 마음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TV와 라디오에서 설교자들이 이 일(911)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미국이 깨어나길 원하셔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계획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미국에 대한 더 큰 계획을 가지고 있고,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지옥 가운데서 영원히 잠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질문 드리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경건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비통한 심장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고 이미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요한 말을 하겠습니다. 저는 부르심에 대해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지만 사람이 그 계획에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왕의 술 관원입니다. 저는 여기 머무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일으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아니요,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것은 제가 담당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내게 주소서”

여러분은 비통함으로부터 멀어지고 수동적인 상태로 돌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크리스쳔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은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조롱받고 있습니다! 대적은 주님의 신실함의 증거를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 상태로는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진정한 기도의 삶은 비통함에서 시작됩니다.

그 비통함에서 일생의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기도하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의 심장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그분의 심장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듣는 자가 거의 없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분의 교회의 상태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마음 상태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네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여러분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네가 나의 부담을 담당하려 한다면…” “네가 회복의 도구가 되길 원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여러분 가족을 위한 회복의 도구로 쓰임 받을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나는 너의 마음에 불을 주었다. 나는 너에게 나의 심장을 주었다.

나는 나의 비통함을 너에게 보여 주었다. 네가 그 비통함을 느끼도록 하였다. 너는 이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저는 50년 동안 비통함 없이 역사하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결코! 결코! 저는 압니다!

설교가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가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이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통함, 금식, 기도, 깨어짐 없이는….

아무 것도 아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벽은 결코 재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비통함의 세례 없이 시도하는 어떤 것도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녹이고 깨어지도록 허락할 때, 주님과 마음을 나눌 때,

그 경험으로부터 하나님이 부르신 대로 비통함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것은 폐허상태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의 모태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고통의 겉옷을 기꺼이 입는 종들만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을 권위와 권리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언약을 설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언약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치유를 주시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혼 깊은 곳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녀들이 지옥에 가도록 놔두지 않겠습니다.

제 남편이, 제 아내가 지옥에 가도록 놔두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죽은 상태, 미지근함, 차가운 상태로 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구하겠다고 마음을 정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느혜미야 1장 8~9절을 보십시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습니다.

“만일 너희가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찌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여기 당신의 언약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단순히 걱정을 넘어선 자리로, 그냥 지나가는 감정을 넘어선 자리로 인도하시도록 한다면,

‘하나님 제가 마음을 정합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붙잡을 모든 권리를 갖게 됩니다.

갱신도, 부흥도, 각성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지도록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드리기 전에는요.

주님, 다시 저의 마음을 깨뜨리기 원합니다.

저를 주님의 심장으로 대려 가시길 원합니다.

오늘 아침에 제 마음을 붙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 7장을 읽었습니다.

7장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보좌 앞에…. 하나님께 경배하여…..”

요한은 흰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경배하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이들은 누구입니까?”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목숨을 버린 모든 세대의 순교자들이 환난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큰 환난에서 나온다는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환난 가운데 어두움 가운데 … 이 많은 사람들이 큰 환난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빛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환난 동안 누군가가 빛을 들고 계속 비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이 환난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져도 아무리 어려워져도 우리는 하나님이 하도록 부르신 일을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일에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저는 십대 사역과 복음 전도 사역을 해왔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말씀을 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이 설교단에서 회중과 함께 헌신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회중들에게 정확히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 후로 수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들에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는 은혜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살아있는 동안 당신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게 하소서,

저의 마지막 순간까지요, 아니면 예수님이 오실 때 까지요.”

여러분, 이제 말씀드립니다.

주의 성령이 제 위에 계십니다. 이 교회가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사람이 설교단에 서 있는 한,

최상의 포도주가 마지막 때를 위해 남겨져 있습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구원의 때입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권능의 때입니다.

단지 심판의 때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최고의 시간입니다.

내 마음이 기쁩니다. 제 마음이 굉장히 불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 손주들에 대한 기대로 말입니다.

죄에 대한 자각과 기름부음이 부어질 것입니다. 새 포도주가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아주 큰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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